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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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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9:49-50

소금을 두고 평화하라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7. 18.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9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9:49-50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소금이 뿌려지듯 불 같은 시험을 만날 것이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겸손의 소금을 간직하여 서로 평화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은 영원한 멸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움켜쥔 손을 잘라버리고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발도 잘라버리고 범죄할 마음을 품게 하는 눈도 뽑아버려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겸손의 소금을 두어 평화의 관계가 되라는 말씀이다.

어떤 이는 43절과 48절의 불은 심판의 불이고 49절의 소금과 불은 정결하게 효과를 가진 핍박을 의미하기에 분리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49절 맨 앞에는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48절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앞에서 나온 손과 발과 눈을 제거해 버리더라도 어린 자를 넘어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끔찍스런 비유를 들어 강조하신 이유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게헨나의 불과 49절의 불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48절은 게헨나의 불이고 49절은 성전 제단의 불이라고들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48절과 49절은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 유대인들이 당연히 알던 것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불은 정결하게 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불은 악한 것을 태워 없애고 부정한 것을 태워 나머지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3:11-12절과 누가복음 3:16-17절에 보면 요한이 오실 메시야에 대해 말한 것에서 불의 두가지 기능이 나온다. 불의 첫번째 기능은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라는 말에서 나온다. 예수께서 오시면 악인들을 심판해서 모두 없애버리신다는 것이다. 게헨나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을 태우는 것도 부정한 것을 제거해서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불의 두번째 기능은 금이나 은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경우처럼 순수하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는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줄 것이다” 라고 요한이 말한 것은 바로 믿는 자들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준다 했는데 역시 불로 태워 정결하게 한다는 그림언어가 쓰였다.

49절에서 불로 소금치듯 함을 받는다는 말의 초점은 불이 내려지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것이다. 마치 소금을 뿌리듯 그렇게 불이 뿌려진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레위기 2:13절에 나오는 소제물에 소금을 치는 장면과 연결이 된다. 예수께서는 레위기 2:13절에서 정결케하는 불과 정결케하는 소금의 그림언어를 가져오신 것이다. 마치 소금을 제물에 골고루 뿌리듯 불를 뿌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태워없애는 심판의 불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되는 불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3:11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줄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어지는 12절에서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고 했기에 불은 믿는 자들에게는 정결하게 하는 불이지만 멸망할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불인 것이다. 48절에서도 같은 불이 뿌려지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 뿌려지는 것이기에 영원한 멸망의 불이다. 그러나 같은 불이 믿는 제자들에게 뿌려지면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49절은 제물에 소금을 뿌리듯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불이 뿌려질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같은 불이 뿌려지지만 믿는 제자들에게는 정결하게 되는 불이다.

이어지는 50절과 연결해 보면 뜻이 분명해진다. 50절 앞부분은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말이 마태복음 5:13절에도 나온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13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라고 하셨다. 이는 제자들이 말로 들려주고 삶으로 보여줌으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전파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 말씀이 세상에 불로 소금 뿌려지듯 뿌려지면 불신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의 불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불인 것이다. 그래서 49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소금을 골고루 뿌리듯 불을 뿌린다고 한 것이다.

곡식에 소금을 뿌려 불로 태워 정결한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처럼 제자들이 세상에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정한 것들은 모두 태워버려서 정결한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8:19절에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하시며 세상을 향해 소금 뿌리듯 제자들을 뿌리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 자체를 뿌린 것이라기 보다는 심판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불인 말씀을 뿌린 것이다.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소금은 지혜를 가리킨다 했다. 그러면 소금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금의 짠맛도 바로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지혜는 9:37절에 나온 가장 낮은 자를 종의 자세로 섬기는 겸손으로 요약된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믿는 자들은 이러한 말씀에 걸려 넘어지고 게헨나의 불에 타는 것처럼 완전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들은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순종하는 제자들은 이러한 불 같은 시험을 통해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50절에서 예수께서는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13절에서는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힌다고 했다. 마가복음 50절도 제자들 공동체는 짠 맛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짠 맛을 잃으면 버려져서 밟히는 소금이 되는 것이고 이는 게헨나의 불에 멸망하는 것과 그림만 다르고 결국 같은 의미이다. 무늬만 소금인 것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믿고 살아가기에 아무 쓸모없어 버려지는 소금 같고 게헨나의 불에 타서 멸망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두가지 명령이 50절 뒷부분에 나온다. 명령은 두가지이지만 결국 하나이다. 소금을 두라는 말은 비유이고 서로 화목하라는 말은 그 비유의 해설이기 때문이다. 먼저 너희 안에 소금을 두라고 했다. 이 소금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따라 겸손히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다.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겸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러한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 나타나는 현상이 화목인데 평화라는 뜻이다. 제자들 중에 누구라도 가장 낮은 자세로 그 중 가장 낮은 자를 섬긴다면 그들이 바로 소금이 되어 그 신앙 공동체 전체가 서로 평화로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정결한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이다. 만약 반대로 이러한 겸손이 없다면 평화가 깨져서 게헨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 안에 소금을 두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맛을 내는 소금이 되는 비결은 우리의 모든 탐욕을 끊어버리고 겸손히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다. 요한 3서 10절에 나오는 디오드레베는 맛을 잃어 길바닥에 버려지는 소금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교만하여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여 사도 요한 일행을 거부했다. 그 반대로 12절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는 맛을 간직한 소금이다. 그가 간직한 맛은 교회 안에서도 증명이 되었고 말씀으로도 증명이 되었고 또 사도 요한 일행도 그렇게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겸손도 성도들에게 증명이 되어야 하고 말씀으로 증명이 되어야 하고 또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증명이 되어야 한다.

성 어거스틴에게 기독교에서 제일 되는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다시 그러면 두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세번째로 기독교의 가장 큰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번째도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어거스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대답한 것이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아 던지는 심정으로 자신의 교만을 던져 버리고 가장 낮은 종의 자세로 낮은 자들을 섬겨야 한다. 그것이 우리 가운데 겸손의 소금을 두는 길이고 서로 평화의 관계가 되어 함께 거룩한 제물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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