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17-29 헤롯이 고관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을 때 헤로디아는 딸을 시켜 음란한 춤을 추게 하여 헤롯을 유혹하게 한 뒤 요한의 목을 베게 했다. 요한은 고난과 죽음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선구자였다.
이전 말씀은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 예수의 이름이 널리 퍼지자 사람들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하고 사람들은 엘리야라고도 하고 선지자라고도 했지만 헤롯은 그 소문을 듣고 요한이 살아났다고 확신하며 두려워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헤롯이 요한의 목을 베게 된 경위를 마가가 되돌아보며 설명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죽은 요한이 살아났다며 두려워 떨었다. 원문에서 17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헤롯이 자기가 죽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하는가 하면 이란 뜻이다. 이어서 마가는 헤롯이 과거에 병사들을 보내서 요한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고 회상한다. 요한은 권력자들에게 체포되어 감금되는 것도 예수님의 선구자이다. 헤롯은 요한을 단순히 가두어두기만 하려 했다. 요한을 가둔 이유는 자신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 때문이다.
요셉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헤롯은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훨씬 전 헤로디아를알았다. 헤롯이 로마로 가는 길에 동생네 집에 들렀다가 헤로디아와 정을 통했고 청혼을 했다. 헤로디아는 헤롯이 더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신분 상승의 기회로 보고 당시 아내와 이혼을 하면 결혼하겠다고 승락을 했다. 헤롯은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기 위해 첫번째 아내를 내보냈다. 헤롯의 첫번째 아내는 이웃에 있는 Nabatea왕국의 Aretas IV 의 딸이다. 나중에 Aretas IV는 이 때문에 헤롯과 전쟁을 벌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헤롯이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다.
18절에서 왜 헤롯이 요한을 가두었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말해왔다는 말은 계속해서 그 죄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19절에 보면 헤로디아는 이 일로 요한에게 원한을 품었고 죽이려 했다. 죽이고자 했다는 말도 계속해서 죽이려고 기회를 찾았다는 뜻이다. 의인인 요한은 헤롯이 한 일이 계속해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는데 악인인 헤로디아는 계속해서 요한을 죽일 기회만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여인은 열왕기상 19:2절에서 엘리야를 죽이려는 이세벨과도 닮았다. 이 여인은 요한을 죽여달라고 헤롯에게 계속 요청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20절에 나온다. 그 이유는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는 헤롯이 요한을 불러다가 그의 가르침을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요한이 죄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즐겁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보호해 준 것이다. 이는 적이 보호자로 변신한 아이러니이다. 헤로디아는 계속 죽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헤롯이 계속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헤로디아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롯의 생일날 고관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요인들을 초청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는 이방인들과 함께하는 세속적인 잔치였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잔치이다.
이 잔치 자리에 헤로디아는 자기 딸을 잔치 자리에 들여보내서 춤을 추게 했다. 이 춤은 아주 음란한 춤이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스트립 바 같은 곳에서 춤을 추는 여인과도 비슷한 것일 것이다. 헤로디아의 딸은 존귀한 신분이다. 그런데도 헤로디아는 자기 딸을 이처럼 희생시켜 가면서 요한을 죽일 계획을 꾸민 것이다. 헤롯과 잔치의 손님들은 공주의 파격적인 춤에 깜짝 놀라면서도 즐거워했다.
헤롯은 헤로디아가 놓은 덫에 완전히 걸렸다. 헤로디아의 딸을 소녀라 했는데 이는 십대 소녀라는 뜻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신체적으로는 충분히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술에 취해있던 헤롯은 의붓딸의 음란한 춤에 성적인 욕망을 느낀 것이 분명한다.
23절에 보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말해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맹세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기에 그런 권한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을 하며 맹세를 한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는 오직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일 때 하는 말이다. 마치 별을 따다가 그대 두손에 가득 드린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헤롯이 자기 의붓딸에게 이런 욕망을 품게 한 것은 엄마인 헤로디아이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악한 여자이다.
24절에 보면 헤로디아의 딸은 몸은 성숙했지만 아직 사리 분별력이 없는 미숙한 소녀처럼 보이다. 헤롯의 제안을 듣고 엄마에게 가서 물었고 엄마인 헤로디아는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달라고 하라 했다. 헤로디아의 딸은 즉시 왕에게 와서 엄마가 말해준 대로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서 달라고 요청을 했다. 즉시라는 말은 아무런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이러한 끔찍한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십대 중반이나 후반의 소녀가 이러한 요청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주저하지 않고 바로 했다는 것은 분별력이 없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이 소녀는 모전여전이고 엄마만큼은 사악한 소녀였던 것이다.
26절에는 덫에 걸린 헤롯이 나온다. 헤롯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고 했다. 이는 매우 슬펐다는 말이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기에 있던 유력한 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했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헤로디아가 노린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남편인 헤롯이 성적인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계략을 꾸민 것이다. 헤롯은 호위병을 즉시 보내서 요한의 목을 베어오게 했다. 호위병은 그것을 가져다가 소녀에게 주었고 소녀는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시체를 달라해서 장사지냈다. 이 모습은 마치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해서 장사지내는 모습과도 같다. 아리마대 요셉도 예수님의 숨은 제자였다. 마가는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마가가 이를 통해 증언하고자 하는 것은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한 것이라는 것이다. 말라기 4:5에 따르면 엘리야를 먼저 보낸다 했다. 또 예수님은 요한이 바로 다시 올 엘리야라 했다. 요한은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준비했을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준비하기 위해 먼저 보냄 받은 사람인 것이다. 이는 예수님도 곧 요한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도 역시 앞으로 요한처럼 이러한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오늘날 우리도 요한처럼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면 우리도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죄를 지적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고 지적하고 책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받을 핍박은 요한과는 형태는 다르겠지만 핍박의 근본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