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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가복음 › 5:21-24

Dawn Word

마가복음 5:21-24

야이로의 간청을 듣고 함께 가신 예수님

잔잔해진 바다 위의 작은 배 · 마가복음 4장

2022. 5. 17.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5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5:21-24 예수께서 배를 타고 유대인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 큰 무리의 환영을 받았고 그 중에 회당장 야이로가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야이로와 함께 가셨다.

이전 말씀에서 거라사 지역 사람들은 귀신들렸던 사람이 온전해진 것을 보고도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만 생각하여 예수께 떠나 달라고 했다. 그러나 치료받은 사람은 가족과 이웃뿐 아니라 모든 데카폴리스 지역을 다니면서 예수를 증거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다시 배를 타시고 유대인 지역으로 건너오셨을 때 회당장이 예수께 딸을 살려달라는 간청을 하는 장면이다.

21절은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셨을 때에 수많은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계셨다고 했다. 원어에서 바닷가에 계셨다는 말은 무리가 바닷가에 서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원어에서는 무리나 예수나 똑같이 3인칭 단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가 서 있었는지 예수께서 서 있었는지는 문제의 초점이 아니다.

21절의 초점은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환영하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반대편 이방인 지역에서는 그곳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유대인들이 사는 가버나움 지역에서는 수많은 무리들이 환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무리들이 모인 이유를 그들이 폭풍이 갑자기 잔잔해지는 것을 멀리서 목격했을 것이라며 우리 주의 인기의 파도가 이제 빠르게 솟아오르고 있다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다. 때로는 본문에 나타나지 않은 상황을 전후 문맥을 통해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며 읽을 수도 있다.

22절에서는 회당장인 야이로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회당장 야이로는 무리들 중에 함께 있다가 예수를 보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렸다. 회당장은 그 지역의 유대교 신앙공동체 안에서 가장 존경받던 사람이다. 이 회당장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다. 사실 존경받는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심한 반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23절을 보면 새번역은 "그가 간곡히 청하였다"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는데 원어는 개역처럼 "그가 많이 간구하였다" 라는 뜻이다. 회당장 야이로가 이렇게 간절히 청하는 이유는 어린 딸이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9:18절에는 죽었다 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당장은 동료 유대인들에게 심한 공격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엎드린 것이다. 만약 딸을 살릴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면 예수님께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회당장의 믿음이 훌륭하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사람은 다른 것 다 해보고 나서 딸이 죽을 위기에 있을 때 예수님을 찾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딸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의원들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딸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기에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다.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주로 하나님 앞에서만 하는 것이다.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이 엎드린 것과 똑 같은 모습이다. 이는 신적 경외심을 표현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존경의 표시이다. 다른 유대교 지도자들이 보면 큰 욕을 먹을 일이다. 하지만 다른 길이 전혀 없기에 예수님 발 앞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그 간청한 내용은 딸이 마지막 순간에 와 있으니 와서 딸에게 손을 얹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딸이 살 것이라는 것이다. 살 것이라는 말도 가정법이기에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살게 해 달라는 간청이다.

이런 회당장에게 예수님은 왜 이제와서 날 찾느냐고 책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없이 회당장과 함께 가셨다. 말씀을 듣던 무리들도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너무나 많은 무리들이 모였기에 서로 떠밀려 가고 있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았는지 예수님까지 밀치며 가고 있었다.

오늘 말씀에서 초점은 회당장의 믿음과 용기에 있지 않다. 회당장은 할 것 다 해보고 나서도 아무 소용이 없고 딸이 죽게되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회당장은 35절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 소용이 없다고 낙심해 있었다. 따라서 회당장의 믿음이 훌륭하다고 칭찬할 수 없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원수들의 우두머리인 자가 회당장이다. 할 것 다 해보고 나서 딸이 죽게 되자 할 수 없이 찾아온 야이로의 속내를 다 아시면서도 아무런 책망도 안하시고 야이로를 따라 나선 예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오늘날 우리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예수님을 찾았을 때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예수님을 찾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오늘 말씀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도 우리의 원수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우리 예수님처럼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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