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0-42 한 나병환자가 간청하고 무릎을 꿇고 말하면서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깨끗하게 해 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열광하며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갈릴리 여러 고을의 회당을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말씀을 들려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그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네 명의 제자들에게 그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40절은 "그리고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오고있다" 라고 되어있다. 듣는 사람들에게 실감나게 들려주려고 과거 사실을 "지금 오고 있다" 라고 현재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병환자가 예수께 다가오면서 동시에 한 동작은 세가지이다.
첫번째 동작은 "간청하면서" 라는 말이다. 한글 번역들은 무릎을 꿇고 나서 간청한 것처럼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는 이 사람은 간청하면서 예수님께 나오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다. 레위기 13:45절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사람을 만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라고 외쳐야 한다. 자신이 나병환자라고 밝히며 멀리 떨어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반대로 간청하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발 피하지 말고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두번째 동작은 "무릎을 꿇으면서" 이다. 그런데 무릎을 꿇으면서 예수님께 나온다는 것이 말이 안되기에 어떤 고대 성경 사본들에는 이 말이 빠져있고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말이 되도록 다듬어 놓았다. 그러나 NASB는 말이 안되도 원어 그대로 직역을 해 놓았다. 이 사람은 자신이 부정한 자이기에 예수님께 아주 가까이 가기 전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제발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간청하며 다가오다가 예수께서 멈추시자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무릎을 꿇고 한 두 걸음 다가왔을 것이다.
세번째 행동은 "말하면서" 이다. 예수께서 멈추시자 무릎을 꿇고 다가온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시자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말한 내용은 예수께서 원하시면 자신을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없이 넘기기 쉬운 말이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기절할 만큼 놀라운 고백인 것이다.
깨끗하다는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부정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레위기에 보면 시체나 다른 부정하다 규정된 것들을 만진 사람은 일시적으로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진 밖에 나가 일정기간 머무른 뒤에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거치고 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영원토록 부정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도 절대로 예배할 수 없던 불쌍한 사람이다.
아무도 치료해줄 수 없었고 제사장이라도 율법의 규정에 따라 판단만 할 뿐 깨끗하게 해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예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귀신을 쫓아낸 것이나 열병을 치료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런 고백을 하며 예수께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권위있는 말씀을 들려주시고 그 말씀의 권위를 기적으로 보여주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병환자는 그렇게 믿고 드디어 기다리던 그분이 오셨구나 생각하며 그 분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을 하며 달려온 것이다.
이러한 나병환자의 모습에 예수님도 큰 감동을 받으셨다. 원어에서 41절은 "불쌍히 여기시며" 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 마음 아파하시며 라는 뜻이다. 마가복음 6:34절의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창자가 끊어질 듯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하셨다는 것이다.
그 다음 동작은 정말 충격적이다. 예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미셔서 나병환자를 만지셨기 때문이다. 율법에 따르면 절대로 나병환자를 만지면 안된다. 더구나 예수님의 병 고치시는 능력은 만지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권위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깨끗하게 되어라" 라고 말씀만 하시면 그만이다. 함께 부정하게 되어 쫓겨날 수 있는데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신 것이다. 예수님은 부정한 나병환자를 부드럽게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을 것이다. 이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어루만지시며 하신 말씀은 나병환자가 했던 말 그대로 "내가 원한다"고 하셨다. 이 말은 나병환자가 말한 신앙고백에 대해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래 맞다.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 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서 "깨끗하게 되어라" 라고 명령하셨다. 제사장도 깨끗하게 되라는 말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사장은 검사한 후에 검사결과를 율법에 따라 깨끗하다는 판단을 해서 선언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사장과 같은 검사 결과의 발표가 아니라 완전한 회복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대제사장 같은 메시야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열왕기하 5:7절에 보면 아람왕이 이스라엘왕에게 자신의 신하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을 때 이스라엘 왕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며 "내가 하나님이냐" 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만약 단순히 로마군대를 물리치고 그 나라를 독립시켜줄 왕으로 오셨다면 이스라엘 왕처럼 옷을 찢으며 "내가 하나님이냐?" 라고 말했어야 했다. 깨끗하게 되라고 말하는 예수는 하나님을 모독한다며 돌로 쳤어야 했다.
또 민수기 12:13절에 보면 미리암의 나병에 대해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이 만약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였다면 하나님께 기도했어야 옳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냐! 내가 원한다" 라고 그 말을 받으셨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이다" 라는 뜻 이외에는 다른 뜻이 절대로 될 수 없었다.
42절에는 즉시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갔다 했다. 그런데 31절의 열병이 떠났갔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31절의 떠났다는 말은 손을 놓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42절의 떠나갔다는 말은 멀리 가버렸다 라는 뜻이다. 나병환자는 부정하기에 진 밖으로 멀리 나가야 했다. 마찬가지로 나병도 부정하기에 멀리 가버려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나병은 즉시 멀리 떠나가 버렸고 이 사람은 즉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전하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는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간청을 하며 나왔기 때문이다. 또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계속 간청하며 나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나병환자를 치료하신 것은 단순히 불쌍한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시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제자로 부르신 네 사람들을 데리고 제자훈련을 시키시는 장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어지는 44-45절을 보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이 사람이 사람들에게 알리자 외딴 곳으로 피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치료가 목적이셨다면 몰려오는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 주셨어야 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진 하나님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창자가 끊어질듯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부정한 나병환자도 사랑의 손길로 만저주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이제 제자가 된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