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40-42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복음 전하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도 제자들과 똑 같은 상을 받을 것이라 당부하셨다.
이전 말씀은 주께 합당한 자 자기 목숨을 얻으려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빠질 자이고 주를 위하여 복음 전하다가 자기 목숨을 잃는 자가 주님의 특수부대원으로 합당한 자라고 했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목숨 걸고 맞아들이는 사람도 제자들과 똑 같은 상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39-41절은 모두가 "… 사람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누가 예수님께 합당한 사람인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42절도 역시 누가 합당한지 보충설명을 한 것이다. 따라서 10:32-11:1절은 하나의 문단으로 읽혀져야 한다. 원어의 구조를 보거나 고대 사본들의 문단 나눈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 중에서도 10:37-42절은 "…사람은" 시리즈이다.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던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오늘 말씀 40-42절은 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먼저 40절에서 예수님은 맞아들임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계신다. 40절은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 즉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보내신 분 즉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 전하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된다.
영접한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받는다는 뜻이다. 물건을 받는 것이나 전하는 말을 받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또 이 말은 welcome이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겉으로 드러난 뜻을 따라 “welcome”이라고만 하면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같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결국 제자들이 하나님과 같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접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영접한다는 뜻은 단순히 집으로 불러들여 음식을 접대한다는 뜻만은 아닌 것이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영접하여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같은 신앙 공동체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비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집으로 맞아들여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그가 전하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같은 신앙공동체로 산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오늘 본문에서 영접한다고 하신 것은 바로 제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같은 신앙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제자들을 맞아들여 음식을 함께 나누고 제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0: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라고 하셨기에 예수님께서 선포한 말씀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결국 오늘 본문 40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간에 계신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제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인데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자들의 메세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세지를 거부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메세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영접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신 뒤 바로 이어 41-42절에서 영접하는 자가 받을 상에 대해 설명하신다.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41절에서는 예언자와 의인을 영접하는 사람이 나온다. 원래 예언자와 의인은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제자들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곧 예언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이란 점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리는 것이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말로 전할 때 영접하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 한 것이다. 또 의인도 역시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 전할 때 엘리야와 엘리사를 맞아들였던 여인들처럼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목회자들이 자신들을 잘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고 말하면 안된다. 오늘 말씀에 나온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고 그런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자들도 역시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나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모두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나거나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돌에 맞아 죽어야 했던 것이다.
42절은 41절을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어떻게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맞아들이는 자가 상을 받는지 보충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라고 했다. 작은 사람은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중에 제자가 된지 얼마 안되는 초보제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한 제자들을 맞아들여야만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중에 누구라도 맞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맞아들여야 상을 받는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원어에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냉수 한 그릇이다. 제자들 중에 가장 미약한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예언자나 의인이 받는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냉수 한 그릇이란 말은 남에게 대접하는 것 중에 가장 쉬운 것이다. 손님을 집으로 맞아들여 음식을 대접한다고 할 때 냉수 한 그릇은 그중 최소한의 대접이다. 하지만 그래도 예언자와 의인이 받는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영접하는 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전하는 자에게 주신 말씀이란 사실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냉수 한 그릇만 대접하는 사람도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던 제자들과 똑같은 상을 받을 것이란 말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꼭 기억해야 할 말이다. 전하는 자는 어떤 대접을 받든지 그들을 똑같이 귀히 여기라는 뜻이다. 냉수 한 그릇이란 가장 미약한 대접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고 귀히 여기고 냉수 한 그릇 대접했다고 하찮게 여기면 안된다는 뜻이다. 복음 전하는 자를 영접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42절 그 다음에 나온 말은 “제자의 이름으로” 라는 말이다. 개역은 원어를 그대로 직역했다. 그 뜻은 새번역이나 NIV처럼 “제자라고 해서” 라는 뜻이다. 제자이기 때문에 냉수한잔만 대접해도 목숨 걸고 복음 전하는 제자들과 똑같은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 영접하는 사람은 그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예수께서 꼭 알아두어야 할 명백한 진리를 설명하실 때 쓴 말이다. 새번역에서는 42절 맨 앞에 넣어 놓았지만 전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는 말 다음에 나오는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다. 너희를 영접하고 너희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리 부족하고 미천한 사람이라도 다 귀중한 사람들이니 절대로 잊지 말고 뼈 속 깊이 새기라는 뜻이다.
목숨을 걸고 다니며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제자들이 너무 고마워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지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냉수 한 그릇 밖에 대접 못해도 그들을 귀히 여기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자들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장에 서서 읽어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도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좋은 대접을 할 것이고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냉수 한 그릇 대접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좋은 대접한 사람들은 높이고 우리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사람은 차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한 우리나 목숨 걸고 우리가 전한 복음을 받아 들인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상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