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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8:14-15

Dawn Word

마태복음 8:14-15

갈곳없는 여인을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8. 2.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8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8:14-15 예수께서는 사돈 댁에 얹혀 살던 시몬의 장모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해 주셨다.

유대인 남자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주여, 내가 노예나 이방인이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나이다. 노예였던 백부장의 종과 이방인이었던 백부장과 여자인 시몬의 장모는 유대인들이 설치한 장벽이었다. 나병환자같은 사람이 빠져있는 이유는 장벽이 너무나 높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위에서 전하신 말씀은 이러한 장벽을 모두 무너뜨리는 말씀이었다. 산에서 내려오셔서 치료하신 세사람은 바로 유대인들이 설치한 이러한 장벽들을 허무셨다는 것을 예로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 말씀의 중심 사건은 바로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여유대인들과여인들 사이의 장벽을 허무신 것이다.

앞에 나온 두 기적은 모두 치료해달라는 요청에 응답해서 치료하신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한 사건은 치료해달라는 요청이 없다. 14절에서 예수님은 단이 이 여인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베드로의 장모는 사위였던 베드로의 집에 살았던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대가족들이 함께 살던 사회였기에 베드로의 부모님의 집에 이 여인은 얹혀 살고 있었던 것이다.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과부는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아들이 없었다. 그런 경우 과부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보니 아버지도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돌아갈 아버지의 집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유대사회에는 오늘날 처럼 양로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정말 갈곳없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딸이 사는 사돈댁에 와서 불편하게 얹혀 살았던 것이다.

그래도 건강할 때는 눈칫밥 안먹으려고 열심히 집안 일을 도왔기 때문에 밥값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을 병에 걸려 누워 있으니 딸 빼놓고는 모두 싫어했을 것이기 때문에 정말 불쌍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장모라는 사실을 알자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어도 이러한 모든 사정을 다 아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인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그 딱한 처지를 보고 불쌍히 여기셨던 것이다.

베드로의 장모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은 두가지 이다. 눕혀진 채 있었다는 것과 열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누워 있었다는 것은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계속 눕혀진채 있었다는 뜻이다. 열병이란 말라리아일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오늘날은 말라리아 라고 하면 죽을 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죽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살았던 인구 중 절반이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도 , 훈족의 아틸라 국왕과 징기스칸의 원정이 중단된 것도 말라리아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말라리아든 아니든 베드로의 장모는 죽을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갈곳도 없어 사돈 댁에 얹혀 사는 것만해도 가장 불쌍한 여자인데 거기다가 죽을 병까지 걸렸으니 이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이 여인을 예수께서 바라보셨다. 그냥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며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신 것이다. 이 마음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신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다.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긍휼이 여기는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신 내용은 14-15절에 있다. 그중에 “예수께서 그여자의 손을 만지시니” 라는 구절이 이부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예수님의 치료의 핵심은 손으로 만지신 것이다. 이런 열병에 걸린 환자를 손으로 만지는 것은 유대교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접촉이 금지된 나병환자도 만지심으로 치료하셨다. 또 마태복음 9:29절과 20:34에도 보면 소경들의 눈에 손을 대어 치료하셨다. 또 마가복음 7:33절에도 보면 말더듬는 사람의 혀에 손을 대고 치료하셨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에게 손을 대어 병이 나은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의 만지심은 치료의 능력을 전달하는 통로였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전선에 다른 전선이 연결되면 전기가 흐르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예수님의 만지심에는 그 이상의 뜻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말씀만으로 치료하신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나병환자나 소경들과 말더듬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격리되었거나 말 할 수 없는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다. 당시 사람들은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며 이런 사람들을 천대했다. 예수님의 만지심은 격리되고 멸시당하던 사람들에게 내밀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었다. 그것은 산에서 말씀으로 가르치신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전달하던 손길이었다.

베드로의 장모를 만지신 예수님의 손길에도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예수님의 손길에는 아들도 없어 딸네 집에 얹혀 사는 죽을 병에 걸린 과부를 향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예수님의 이러한 손길이 닿자 열병이 떠나갔다. 여인은 일어났다. 마가복음에서는 손을 잡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물론 마태가 예수께서 손을 대셨다는 뜻은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손을 잡으셨을 것이다. 그러자 열병이 떠나가고 그 여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물론 여인이 일어나려고 하자 예수께서도 잡고 계신 손을 당겨주셨을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을 한손을 잡아 억지로 일으킬 수는 없다. 손을 잡아주었을 때 병이 나았고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여인이 일어났기에 마가는 예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마태는 여인이 스스로 일어난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은 일어나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이는 일어나서 예수께 음식을 대접했다는 뜻이다. 죽어가던 사람이 병이 나아서 일어났다고 해도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해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이 음식을 온 힘을 다해 음식을 대접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과 함께 온 제자들에게도 음식을 줬겠지요. 그래서 마가는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것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음식을 대접한 것으로 기록한 것이다.

베드로의 장모는 당시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안하던 여인이었다. 뿐만아니라 병에 걸린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쳐다보지도 만지지도 않던 불쌍한 여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여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해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여인을 치료하신 기적이 말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신 능력에 있지 않다. 이 기적은 예수께서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이 모두 멸시하고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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