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3:14-19 하나님께서는 니느웨가 의지하는 군대의 힘과 막대한 재물과 수많은 인적 자원들이 다 사라질 것이며 그러한 것으로 아무리 대비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이 완전히 망한다고 하신다.
이전 말씀은 니느웨의 위치가 아무로 좋고 그 성들이 튼튼하고 그 군대가 아무리 많고 강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어지는 나훔의 마지막 부분은 막을 준비를 해 볼 테면 해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아무 소용없고 결국 앗수르 왕도 죽게 된다는 것이다.
14절은 에워싸일 것에 대비해서 물을 길으라는 것이다. 장기간 적에게 포위 당한 채 싸우려면 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라고 했다. 요새를 점검하여 약한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보수하라는 것이다. 무엇으로 보수하는가 하면 진흙을 밟아 벽돌을 찍어내라는 것이다. 벽돌은 나무로 만든 틀에 발로 밟아 반죽한 진흙을 넣어 만드는 것이다. 개역에서 "벽돌 가마" 로 번역된 말은 벽돌을 찍어내는 틀이지 벽돌을 구워내는 가마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하라는 말은 실제로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말이 아니다. 이는 비꼬는 투로 "할 테면 해봐라" 라는 뜻이다. 아무 소용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15절 앞부분은 왜 그러한 준비가 아무 소용이 없는지 말해준다. 이는 적들이 와서 니느웨를 공격하는 순서대로 말한다. 먼저 불이 너를 삼킨다고 했다. 적들은 먼저 불화살을 쏘아 불을 질러 태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칼이 너를 벨 것이라고 말한다. 먼저 불로 공격한 다음에는 적군이 몰려와서 칼로 모두 베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느치가 먹어치우듯 한다고 했다.
Barker와 Smith는 느치란 어린 메뚜기 떼일 것이라 했다. 어른 메뚜기보다 훨씬 더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파괴적인 식성을 지녔다고 말한다(Barker, 239; Smith, 349). 느치 떼가 지나간 자리에는 푸른 풀이나 채소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느치 떼 앞은 녹색이지만 그 지나간 자리는 황토색만 남을 것이다. 느치 떼가 모든 녹색식물들을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느치 떼가 지나간 자리처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인다는 뜻이다.
15절 뒷부분은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 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라고 말한다. 이는 니느웨를 공격하는 적들이 그렇게 많아지라는 뜻일 수도 있고 니느웨의 군대를 그렇게 많이 준비하라는 뜻일 수도 있다. Smith는 니느웨에게 방어하는 군대를 늘리라는 뜻으로 해석했다(Smith, 350). 문맥을 보아도 16절에서는 상인들을 그렇게 많게 했다고 했기에 15절 뒷부분도 니느웨의 군대들을 느치 떼처럼 많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빈정거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16절은 니느웨가 자신의 상인들을 하늘의 별보다 더 많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메뚜기 떼가 날개를 펴서 날아가듯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15절에서는 군대를 늘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는데 16절에서는 그렇게 많은 상인들을 통해 재물을 긁어 모았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17절은 네 방백들은 어린 메뚜기 떼와 같고 네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와 같다고 말한다. 추운 날 담벼락에 앉아 있다가 해가 뜨면 날아가는 것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해가 뜨기 전에는 담벼락에 가만히 앉아있다고 해가 뜨면 체온이 올라가기에 날아가는 것이다. 통치자들과 군대의 지휘관들도 메뚜기 떼들처럼 해가 뜨면 다 도망가버린다는 뜻이다. 결국 믿었던 인적 자원들도 다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군대의 힘도 재물의 힘도 인적 자원의 힘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말기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18절은 네 목자들은 잔다고 했다. 잔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네 귀족들은 누워 쉰다고 했다. 역시 죽었거나 아니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어간다는 뜻이다. 모든 지도자들이 전쟁을 통해 적군의 칼에 다 죽었다는 뜻이다. 네 백성들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인 목자와 귀족들이 다 죽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목자로 비유하고 백성들은 양 떼로 비유하며 양 떼가 다 흩어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19절은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다고 했다. 이는 앗시리아의 왕도 치명상을 입고 죽어간다는 뜻이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항상 앗시리아 왕에게 행패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앗시리아 왕이 죽어가는데도 슬퍼해 줄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는 것이다. 앗시리아 왕의 잔혹한 통치에 고생하던 약한 나라 백성들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장면이다.
나훔은 대부분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멸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훔을 통해 말씀하시는 초점은 니느웨의 멸망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과 재물과 사람들과 같은 세상적인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음란하게 섬기는 자들은 이렇게 완전히 멸하신다는 본보기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세상적인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하며 그들 위에 군림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욕을 해대며 심판을 선포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하거나 믿고 의지해서는 안된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소외된 자들 약한 자들 버림 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시며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적을 행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썩어질 세상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도 역시 우선은 성공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니느웨처럼 완전히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