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9-10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유는 바울이 유대교의 제사나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라며 바울은 항상 로마교회 유대인 성도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그들에게 가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은 로마 교회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유대인 신자들의 열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로마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에게 나가 좋은 것을 얻기를 원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9절은 왜냐하면 이란 말로 8절과 연결이 된다. 이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원문에서 9절은 하나님은 나의 증인이시라는 말로 시작한다. 무엇에 대한 증인인가?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하나님이 증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섬겼는가? 바울은 그 아들의 복음 안에서 자신의 영으로 섬겼다고 했다.
섬긴다는 말은 원래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말한다. 본래 성전에서 제사 드리기 위해 봉사하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나 제사장들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예배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특별히 유대인 신자들에게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함께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며 예배하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새번역에서 “충심으로” 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내 심령으로” 라고 번역한 말은 직역하면 "내 영으로" 라는 말이다. 여기서 영은 육의 반대이다. 육이란 율법이나 할례나 제사의 절차 같은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 제사보다는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다. 로마의 유대인 신자들도 이방인 신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나 할례나 제사의 절차가 아닌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한 것이다. 육의 반대인 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반대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함으로 내 영으로 예배한다고 한 것이다.
내 영으로 예배한다는 말은 바울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요한복음 4:23-24에 보면 진정한 예배 장소를 묻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진정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심산 성전이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은 육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예배하는 것은 영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다.
초기 교부들(Church Fathers)도 이러한 해석을 지지했다. 오리겐(Origen, 184-254)이라는 교부는 이 부분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항상 영을 선호했고 육과 육적인 것들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는 율법으로 예배하길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길 원했다는 뜻이다. 암브로시아스터(Ambrosiaster, after 384)도 "내 영으로" 란 말은 모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 가르치신 것이라고 했다. 몹수스티아의 씨어도어(Theodore of Mopsuestia, 428) 도 "내 영으로"는 할례와 안식일주의와 희생제사 같은 유대인들의 육적 예배와 대조되는 것이며 이중 아무것도 영적이거나 진리가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5세기 이전의 Church Fathers들은 "내 영으로" 라는 말을 유대교 율법과 반대되는 말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던 당시 유대인들의 주장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육으로 예배하지 않고 영으로 예배했는가? 그것은 바로 9절 앞부분에서 그 아들의 복음안에서 영으로 섬겼다고 했다는 말에서 나온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함으로 영으로 예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증인되어 주시는 것이다.
다음 단계의 부름 받은 자들의 예배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9절 끝부분에 보면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억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전도할 대상자들도 역시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들이 복된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간청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으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할 때도 끊임없이 마음에 품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멀리 있던 로마교회 성도들을 끊임없이 마음에 품고 살았다. 멀리 있어 직접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가서 직접 만나고 싶지 않겠는가? 부름 받은 자의 기도도 이처럼 끊임없이 마음에 품는 것이다. 바울은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로마에 가길 간청했다고 10절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바울은 기도할 때 조건을 달았다. 10절에서 그 조건은 원어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제 어떤 시간이든지 좋은 길로 안내 되길" 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고 가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마음에 간절히 담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겠다는 뜻이다.
바울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따랐다면 바로 로마에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바울은 로마서를 쓸 때 유대인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이처럼 쫓기는 가운데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가득한 예루살렘에 가려고 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뜻을 따랐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했는지 지난 날을 돌아보자. 죽을지도 모르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보다 안전하고 꼭 가보고 싶은 로마로 가지 않았는가? 하지만 바울은 로마로 가고 싶은 마음이 절박했던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마음에 품고 간절히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끊임없이 기도하되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순종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바울은 골로새서 1:9-11절에서도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믿음으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랐다. 이것이 부름 받은 자들의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