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29-31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서 두 해 동안 머물며 자기 집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영접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담대히 전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바울이 나중에 자신을 찾아온 로마의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에게 구약성경을 가지고 설득했을 때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자 바울은 이사야를 인용하며 당신들이 거부한 것을 이방 사람들이 듣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낙심하지 않고 두 해 동안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쳤다는 내용이다.
29절은 없음이라고 되어있다. 그 이유는 일부 비잔틴 계열 사본들에만 존재하고 대다수의 중요하고 오래된 사본들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잔틴 계열 사본들에 남아있는 내용은 “바울이 이 말을 마쳤을 때 유대인들은 떠나갔다. 자기들끼리 심각한 논쟁을 벌이면서” 라는 내용이다. 이는 28절에서 30절로 갑작스러운 전환 때문에 추가된 것일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본의 증거나 본문의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하려고 후대의 필사자들이 추가해 넣은 것이 분명하다.
30절은 바울이 이년동안 자기 셋집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는 60-62년쯤에 로마에 있는 자기 셋집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어떤 이는 바울이 집세를 빚지지 않으려고 다시 천막 만드는 일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자기 셋집이라는 말이 바울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이라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추측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셋집이라는 말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크리스천 친구의 집일 수 있다. 그 때쯤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로마로 돌아왔다.
여기서 셋집이라는 표현은 바울의 돈으로 세를 냈다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다. 셋집이라는 말의 강조점이 스스로 비용을 마련했다는데 있지 않고 일시적인 거처라는데 있다. 이 년이라는 말을 볼 때도 강조점은 일시적인 거처에서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했다는 것이다. 다수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은 유대인 이방인 모두 다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바울에게 듣고 싶어 그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환영하고 맞아들였다는 뜻이다.
31절은 30절에 딸려있는 종속절이다. 어떻게 자기의 임시 거처로 오는 사람들을 다 맞아들였는지를 보충설명하는 내용이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다. 23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이 목격했다며 증언했지만 그 뒤 2년간은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는 마치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는 것과도 같다.
둘째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과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사역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가르친 것이다.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선물로 주고 가신 것까지 가르친 것이다. 메시야의 나라가 임했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뒤 그 메시야가 어떤 분인지 개인적으로 가르친 것이다.
이렇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했는지 두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담대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진리를 은폐하지 않고 분명하며 두려움이 없는 말로 전했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전했었다. 2년 동안 로마의 셋집에 살면서 이렇게 선포하고 가르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협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또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로마 군인을 옆에 붙여 주셔서 항상 함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이년 동안 아무도바울을 해치지 못한 것이다.
둘째는 거침없이 선포하고 가르쳤다. 거침이 없다는 말은 방해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울은 비록 손은 군인들의 감시에 매여 방해를 받고 있었지만 입은 방해받지 않았다. 바울의 한 손은 감시하는 군인들에게 매여있었지만 군인들은 바울이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허용했고 바울은 마음놓고 선포하고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증언이 2년간 고난의 기간동안에 확장되고 풍성해지고 확증되었다. 첫째로 그의 증언은 고난을 통해서 결국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까지 확장된 것이다. 둘째로 바울의 증언은 고난을 통해서 풍성해졌다. 바울이 가택연금으로 있던 기간동안 쓴 옥중서신들은 기쁨과 평강과 인내와 만족의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바울의 증언은 고난을 통해 확증되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는 모습은 그 믿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증해 준 것이라는 것이다.
고난의 기간동안 우리가 선포하고 가르치는 복음도 역시 그러한 고난을 통해 점차 확장되고 그 내용도 풍성해지고 확증된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 자체는 우리가 믿는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고난을 겪게 하시며 그 고난을 통해서 로마에까지 가서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특별히 선교지로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든 대적하는 사람이든 우리를 낙심시키는 사람이든 모두 다 발씻기는 종의 모습으로 문 앞에 서서 영접해야 한다.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우리가 가르치는 말씀을 배우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섬기며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내게 오는 모든 사람들을 영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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