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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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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6-47

주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더해 주셨다

2024. 9. 17.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46-47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고 집집마다 빵을 떼며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자 주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해주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믿는 자들이 한 장소 위에 모여서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며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고 집집마다 빵을 떼며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여서 주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더해주셨다는 내용이다.

46절은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열심히 모인다는 말은 앞으로 향한다는 말과 꾸준히 견딘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꾸준히 참고 견디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한마음으로" 라는 말은 똑같이 숨쉰다는 뜻이다. 모두가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똑같이 고른 숨을 내쉰다는 뜻이다. 따라서 저절로 한 마음이 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참고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나 보기만 해도 분노가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모두가 똑같이 숨을 참고 꾸준히 견디며 날마다 함께 모인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44절에서한 장소 위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는 말은 성전에서 함께 모여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노가 일어날까?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분노가 일어날 것이다. 특히 전체가 모였을 때 물질을 나누어 주었는데도 그 고마움을 모르기 사람들 때문에 큰 분노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도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베드로 당시 예루살렘 성도들도 사실 그러한 미성숙한 성도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일부가 그렇게 거친 콧김을 계속해서 참으며 섬겼기에 그렇게 모두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고난을 참고 견디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은 탓이다. 배운 말씀에 대해 성령님께서 인내하며 끝까지 견디도록 도와 주셨기 때문이다.

이와 짝을 이루며 대조되는 내용은 이어 나오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다. 함께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였던 성도들은 흩어져서 각각 집에서 소그룹으로 모인 것이다. 모여서 빵을 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부하신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함께 모여 사랑을 나눈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함께 음식을 먹는 것으로 나타난다. 음식을 먹는다는 말은 함께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는 받는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게 함께 음식을 나누어 받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기쁘게 라는 단어와 순전하게 라는 단어가 그림처럼 그려주고 있다.

먼저 기쁘게 라는 말은 시편 45:7절에 보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라는 말에서 나온다. 이 말은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제사장이 왕에게 기름을 부으면 모두가 다 왕께 만세를 외치며 소리치며 기뻐하는 대관식의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당시 예루살렘에 모인 성도들이 음식을 나누어 받으며 그렇게 축제의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44절에서는 태중에 있던 요한이 뛰놀았다는 경우에도 쓰였다. 펄쩍 펄적 뛰며 소리칠 만큼 기뻐한다는 뜻이다. 당시 성도들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받으면서 모두가 펄쩍펄쩍 뛸만큼 기뻐했다는 뜻이다.

또 순전한 마음이란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바위가 없는 마음이란 뜻이다. 마음에 걸림돌이 없이 매끄럽다는 뜻이다. 이는 위선이나 가식이 없고 남을 속이려는 마음이 없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의 대관식 같은 잔치날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왕께 만세를 외치지만 왕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으로 웃으며 왕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 46절에 나타난 잔치 자리에는 그렇게 물질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빵을 떼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눈 것이 주의 만찬일까? 아니면 일반적인 식사를 한 것일까? 다수의 주석가들은 일반적인 음식을 나누면서 그 중에는 주의 만찬도 포함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가 설교한 교회는 단순히 빵을 뗀 것과 주의 만찬의 행위로 빵을 뗀 것을 구분하지 못했을 수 있다. 오늘날 예배시간에 하는 주의 만찬의 형태는 나중에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생긴 형태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하는 주의 만찬과 같은 형태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집에서 모여 빵을 함께 쪼개면서 주의 만찬을 통해 주님을 기억하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했을 것이다.

거짓이 없는 순전한 마음의 반대인 예가 5:1-11절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물질을 나눈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억지로 나눈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물질을 나누어 주던 사람들은 모두가 가식이 없는 마음으로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순전한 마음은 소유와 재산을 팔아서 내놓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들이 아무런 사심이 없이 마음 속에 계산이나 어떤 걸림돌도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내놓았기에 받는 사람들도 펄쩍펄쩍 뛸만큼 기뻐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환호하며 기뻐했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성도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는 자리는 이처럼 거짓이 없는 진정한 기쁨이 넘치는 자리였다. 46절의 음식을 나눈다는 말을 중심축으로 해서 46절의 두가지 동작과 47절의 두가지 동작이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46절에서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인다는 말과 집집마다 빵을 뗀다는 말은 모두 46절의 음식을 나눈다는 설명한 말이다. 성전에서 한마음으로 모이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이다. 또 이어지는 집집마다 빵을 뗀다는 말은 믿음의 형제들간의 교제하는 것으로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었다는 뜻이다.

47절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과 백성들에게 호감을 샀다는 말도 역시 46절의 음식을 나눈다는 말을 설명한 말이다.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찬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모든 백성들에게 호감을 샀다는 말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표현되었기에 모든 백성들이 칭송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당시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주일 예배처럼 모두가 성전에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가르침은 각각 가정에서 모여 빵을 떼면서 믿음의 교제를 함으로써 각자의 마음에 자리잡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기에 모일 때마다 펄쩍펄쩍 뛸듯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음식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눔은 소유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때때로 내 놓아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한 은혜를 통해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들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믿는 자들을 칭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라고 했다. 누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더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즉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서 믿는 자들이 계속 늘어났다는 것이다. 41절에서도 더해주셨다는 말이 나왔는데 베드로가 말씀을 전한 뒤 주께서 삼천명을 더해주신 것이다. 절대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받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또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3:6-7절에서 본인이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했다.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시고 믿음이 성장하게 하시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44절에서 "함께 지내며" 라는 말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장소라는 뜻이 아니라 함께 모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47절에도 역시 같은 장소라는 말이 나오는데 한국어나 영어에서 번역이 되지 않았다. 주께서 함께 모인 공동체에 사람들을 더해 주셨다는 것이다. 함께 믿음의 공동체로 모였다는 것이고 또 그 공동체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더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의 역사이다. 성령님께서 함께 모이도록 해 주셨고 또 그 모임에 사람들을 계속 더해 주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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