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3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귀로 들은 모든 영혼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이어서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놀라운 일들과 표징들도 일어나서 선포한 말씀의 권능을 눈으로도 보게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베드로의 증언을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며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말하며 구부러진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하자 믿는 자가 하루에 삼천명이나 늘어났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나누는 것과 주의 만찬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집중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고 또한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43절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누가는 두려움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할 때 썼다. 누가복음 1:65절에서는 사가랴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도 두 사람 다 아이 이름을 각각 요한이라 말한 것에 놀란 것이다. 또한 사가랴가 아이 이름을 말한 뒤에 말을 다시 하게 된 것에 놀란 것이다. 누가복음 7:16절에서는 과부의 아들을 살린 것을 보고 모두가 두려워 했다. 사도행전 5:5과 11절에서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죽은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다고 했다. 따라서 누가는 두렵다는 말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것을 보고 두려워할 때 썼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두렵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한다. 먼저 37절에서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한말로 돌아가야 한다. 이 말을 보면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베드로의 가르침 때문이다. 절대로 기적 그 자체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말이 아니다. 그 두려움은 베드로의 가르침의 내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또한 배움이 없는 베드로가 많은 무리들 앞에서 이렇게 놀라운 가르침을 전한 것 때문에도 두려워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려움은 베드로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것을 깨달았기에 두려워한 것이다. 두려움이 생겼다는 말은 계속해서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는 뜻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도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는 말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놀라운 일과 표징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과 표징도 역시 계속해서 나타났다는 뜻이다.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고 말한 뒤 또 놀라운 일과 표징도 계속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과 표징이란 2:19절에서 "하늘에는 놀라운 일, 땅에는 징조" 를 나타낼 것이라 할 때도 나왔었다. 2:17-18절에서 예언을 할 것이라고 한 뒤에 19절에서 놀라운 일과 징조가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말로 전해진 다음에 그 영광과 권능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난 것이 "놀라운 일과 표징" 이다. 복음서에서도 예수께서 권세있는 말씀으로 가르치고 나서 그 하나님의 권세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바로 놀라운 일과 표징이다. 성령님께서 먼저 하나님 말씀을 귀로 듣게 한 뒤 또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놀라운 일과 표징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표적과 기사 자체가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4:48절에 보면 예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라고 왕의 신하를 책망하셨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것을 드러내기 위해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신 것이지 표적과 기사 자체를 강조하신 적은 없다. 더구나 마태복음 24:24절에 보면 예수께서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라고 하셨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 다음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사탄의 속임수이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서도 표적과 기사는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말씀을 전하고 난 뒤에 나타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이 나타난 선포를 귀로 듣고 계속해서 두려워 한 것이다. 놀라운 일들과 표징들은 두려워하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다음에 일어난 내용들이다. 능력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명하기 위해 놀라운 일과 표징이 따라온 것이지 놀라운 일과 표징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원어는 그것도 한 두 번 나타난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그 모든 내용이 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사도들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선포했고 성령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계속해서 확증해 주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