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28-32 유대교 지도자들은 날이 밝자 예수를 총독의 관저로 끌고가 넘기자 총독은 무슨 죄냐고 물었지만 단순히 악을 행한자가 아니라면 넘기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며 죽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총독은 너희들의 율법을 따라 너희가 재판하라고 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어떠한 죽음을 당할 것인지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불을 쬐다가 대제사장의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했고 베드로가 귀를 자른 종의 친척이 분명히 보았다고 하자 또 다시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자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는 내용이다.
28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27절과 연결된다. “닭이 울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닭이 우는 때는 동이 틀 때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를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그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역사 기록을 보면 로마황제 베스파시안도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했다고 되어 있다. 당시 로마인들은 일찍 일을 시작하고 일찍 끝냈던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밤새 예수님을 신문하고는 날이 밝고 총독부의 업무시간이 되자마자 예수님을 넘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넘기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총독의 관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방인이 사는 집에 들어가면 7일 동안 부정하게 된다. 그러면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부정하게 될까 염려하여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율법 조항들은 철저히 지키며 거룩한 척 했던 사람들이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율법 조항은 지키는 척 하면서 율법에 담긴 정의와 긍휼은 버린 사람들이다. 모형인 유월절은 철저히 지키려 하면서 진짜 유월절 양인 예수님은 영접하지 않고 죽는데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13절에서는 천국 문을 닫고 못들어가게 하는 자들이라 하셨다. 23:16절에서는 눈먼 인도자 라고 하셨다. 23:24절은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라고 하셨다. 23:25절에서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라고 하셨다. 저들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율법을 지키며 거룩한 척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의 뜻은 받아 들이려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유월절 양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이다. 진짜 유월절 양인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모형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진짜 유월절 양을 서둘러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진짜 구원의 능력을 충분히 전하고 그 증거를 보여주었는데도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세상 것들을 지키려고 그 구원의 능력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29절에서 빌라도가 총독의 관저에서 나왔다. 빌라도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발하는지 물었다. 죄인을 처벌해 달라고 로마 총독에게 넘겨 주려면 정확한 죄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30절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총독님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정확한 죄목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냥 나쁜 사람이니 죽여달라고 짜증 섞인 대답을 한 것이다.
진짜 예수님의 죄목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예수님을 그냥 두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부귀영화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겠다고 느낀 것이다. 그것이 진짜 예수님의 죄목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의 죄이다. 자신들의 죄를 감추려고 예수님을 거짓으로 고소한 것이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그래서 밤새 예수님을 심문해서 거짓 증거를 찾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거짓 증거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쁜 일을 한 사람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넘겨 준 것이다. 그냥 묻지 말고 죽여만 달라는 뜻이다. 자신들이 판단하는 율법에 따르면 예수님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유대교의 율법에 관한 것이니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 내부의 일이니 자세히 알려고 하지말고 그냥 도장 찍어주고 처형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31절도 “그러므로” 라는 말로 연결된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정확한 죄목을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뜻을 간파하고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서 너희들의 율법대로 재판하라고 한 것이다. 로마정부는 유대교의 율법으로 재판하는 것은 사형이라도 용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증인들을 내세워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재판을 한 뒤 돌로 쳐 죽이면 끝이다. 빌라도는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대교 지도자들은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대답을 했다.
저들의 대답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당시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잘못된 말이다. 로마인들은 유대교에 관한 일이라면 여간해서는 간섭하지 않고 자율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유대인들에게 사법권은 없었다 해도 종교적인 자율권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왜 자신들이 직접 죽이지 않고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을까?
자신들이 직접 죽인다면 율법에 따라 신성모독죄로 돌로 쳐 죽이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직접 죽였다는 비난을 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냥 돌로 쳐서 쉽게 죽게 하기에는 저들의 분노가 너무 컸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몰아 로마인들의 손에 죽게 하려 한 것이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참하게 죽게 하려 했던 것이다.
32절은 요한의 해설이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요한은 증언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로마인들의 손을 빌려서 가장 잔인하게 죽이려 한 것이다. 자신들의 뜻대로 한 줄 알았는데 요한복음의 기록자는 그것이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심판하여 돌로 쳐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더 잔혹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생각해 냈다. 저들은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로마제국의 지배자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달아 죽이려 한 것이다. 저들은 당시 하나님을 제일로 잘 믿는다던 사람들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최고로 잘 지키는 척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가장 잔혹한 살인을 계획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었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