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9-24 안나스는 예수를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고 제자들의 숫자를 물었고 백성들에게는 거짓 예언자이기에 죽였다고 해명하려고 가르침에 관해 물었지만 예수께서는 재판의 절차에 따라 증인들을 불러 물어보라며 불법적인 재판을 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 들어가지 못하자 뒤 따라온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기에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베드로는 하인들과 성전 경비병들 사이에 끼어들어 함께 불을 쬐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대제사장이 예수를 신문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첫번째 부인과 두번째 세번째 부인의 중간에는 예수님의 증언이 나온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 중에서도 여종의 말에도 두려워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신문을 받고 계시면서도 당당히 대답하고 계신다.
19절에서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두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제자들에 관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한 질문이다. 첫째 질문의 초점은 예수님의 제자들 수가 많다고 알고 있기에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은 것이다. 제자의 수를 물은 이유를 신명기 13:1-10절을 근거로 거짓 예언자가 거짓된 가르침으로 많은 백성들을 현혹시키면 죽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질문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대제사장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기에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가 많은 것은 로마제국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안나스의 관심은 예수를 죽일 근거를 찾는 것이다. 안나스는 그 수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로마제국에 위협이 되는 반 로마 항쟁의 우두머리로 몰아 로마제국 권력을 빌어 죽이려는 것이다.
둘째 질문의 초점은 가르침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로마제국과는 상관없이 신명기 13장을 근거로 거짓 가르침을 전해서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자로 정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죽인 근거를 해명하려고 물은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든 아니든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의 수를 먼저 물어 로마에 대해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고 한 것이고 백성들에게 왜 죽였는지는 신명기에 근거한 거짓 예언자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20절에서 제자들의 숫자에 관한 질문은 무시하시고 오직 가르침에 대해서만 “나는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소” 라고 대답하셨다. 세상이란 유대교의 율법을 가르치는 유대교 지도자들 중에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나는 항상 당과 성전에서 가르쳤소, 모든 유대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서” 라고 하셨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항상 있는 회당과 성전에서가르친 것이 바로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가르치던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지 제자들과 몰래 반역을 모의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말은 ‘언제나’ 라는 말이다. 항상 공개적으로 가르쳤고 몰래 제자들과 모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수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물어 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항상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쳤다고 하시면서 21절에서는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묻소?” 라고 대꾸하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러한 질문이 당시의 재판 절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에서 재판관은 피고에게 묻는 법이 없다. 오직 증인들에게 묻고 나서 증거가 확실하면 처벌을 하고 증거가 없으면 방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소” 라고 하신 것이다. 안나스는 당시 재판의 절차를 어기고 피고인 예수님께 직접 물어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다. 증인들에게 물으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만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대제사장의 질문 자체가 불법이니 합법적인 재판을 하라고 따지는 말이기 때문에 22절에서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이 “대제사장에게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면서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린 것이다. 대제사장에게 충성스러운 성전 경비병 장교 한 사람이 예수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세개 친 것이다. 감히 대제사장 앞에서 대제사장의 잘못을 지적하다니 무슨 말버르장머리냐는 식이다. 존귀하신 대제사장 앞에서 좀 더 공순하고 낮은 자세로 대답하라는 것이다.
23절에서 예수님은 성전 경비병 장교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대라. 그러나 내가 한 말이 옳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22절에서 재판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따진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또한 앞에서 말한대로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는 로마제국에 반대해서 반역을 일으킬 모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재판 절차에 대해 항의한 것이 잘못이거나 실제로 죽을 죄를 지었다면 그 잘못에 대해 증거를 대 보라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진실을 말했다면 왜 때리느냐는 것이다. 성전 경비병은 할 말이 없어졌다. 24절에 보면 지켜보던 안나스도 더이상 할 말이 없어졌기에 예수님을 가야바에게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신분인 여종에게도 비굴하게 아니라고 하던 베드로와 대조가 된다. 예수님은 성전 경비병 장교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안나스에게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재판하라고 따지신 것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비겁하게 말 꼬투리 잡으려고 하지 말고 당당하게 증언들을 불러 물어 그 증거에 따라 재판하라며 따지신 것이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차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느냐 아니면 사람들을 두려워하느냐의 차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