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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6:29-33

Dawn Word

요한복음 16:29-33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2024. 7. 1.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6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6:29-33 제자들은 이제야 완전히 다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너희는 모두 다 예수님만 홀로 남겨두고 흩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제자들은 아직 다 알지 못하고 성령께서 오신 뒤에야만 다 알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혼자가 아닌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세상 안에서 환난을 당하더라도 담대하라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아버지에 대해 제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하실 때가 오는데 그 날에는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직접 구할 것이라며 이는 제자들이 아버지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제자들은 이제야 완전히 다 알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너희는 아직도 다 모른다는 뜻으로 모두 다 예수님만 홀로 남겨두고 흩어질 것이지만 예수께서 혼자가 아닌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며 환난 가운데서 담대하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29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다. “보십시오, 이제야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런 비유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개역에서 비사로 번역한 말이 25절에서 나왔는데 29절에 또 나왔다. 25절을 설명할 때 밝힌 것처럼 여기서 비유라는 말은 빗대어 말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말이라는 뜻이다. 25절에서는 비밀스러운 말로 말하지 않은 것과 반대로 앞으로 밝히 말할 것이 대조되었다. 그러나 29절에서는 밝히 말한 것과 비밀스러운 말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조된 것이다.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밝히 말하는 것의 반대가 비사로 말한다는 뜻이다. 새번역과 개역개정에서 알기 쉽게 하려고 비사를 비유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비유와 비사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말이기 때문이다.

30절은 이야야 우리는 안다는 말로 시작한다. 안다는 말은 완전히 다 안다는 뜻이다. 이어서 제자들이 완전히 안 것을 두가지로 말한다. 첫째로 제자들이 완전히 다 아는 것은 주께서는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제자들이 완전히 다 아는 것은 어떤 사람도 주님께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새번역이 추가로 덧붙여 놓은 설명처럼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이 분명하게 환히 알려주신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omni-science)이란 하나님의 속성이다. 예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보면 이제 제자들은 완전한 믿음을 가진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제자들의 크나큰 착각이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전지하신 능력은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추가로 설명해 주시자 “아, 이제야 알았다!” 라고 하는 상태일 뿐이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아도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전지하신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1-32절에서 예수께서는 “이제야 너희가 믿느냐? 보아라, 때가 오고있다 그리고 완전히 왔다” 라고 하셨다. 새번역에서 올 것이라고 번역한 말은 현재형이기에 지금 오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그 시간이 예수님과 제자들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중계방송하듯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리고 완전히 왔다” 라고 하신 것은 그렇게 예수님과 제자들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시간이라는 존재가 이미 완전히 도착했다고 이어서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시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가 하면 제자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흩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만 홀로 버려둔다는 것이다. 말로만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전지하신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은 예수님을 믿고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전지하심을 완전히 알고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로만 다 안다고 하는 것이기에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만 버려두고 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한마디 덧붙이셨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제자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예수님 홀로 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예수님과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믿음이란 제자들처럼 말로 떠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잡혀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께 몸을 완전히 맡기고 의지하며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완전히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27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완전히 믿었다는 말은 앞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으면서 그렇게 믿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아직 예수님의 전지하심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오실 그때에야 모든 것을 다 알고 하나님께 직접 간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7:46절에 보면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고 하신 말씀과 모순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버려두고 떠나시는 장면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마저도 예수님을 버려두고 떠나셨기에 절망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아니다.

이는 시편 22:1에서 온 말이다. 시편 22편을 보면 이 말은 시편 기록자가 아주 힘든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간구해도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 22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시편 기록자를 버리셨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은 힘든 상황에서도 시편 기록자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외침은 시편 22편의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뜻이다. 시편 22편 앞부분만 겨우 외치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완전히 믿고 완전히 알았다고 대답한 제자들에게 다 도망갈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님과 함께 계실 것이라 말씀하신 이유가 33절에 나온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완전히 다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것이 바로 그 답이다. 이는 예수께서 15:5절에서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다른 말로 다시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환난이 닥쳐도 항상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께 붙어 있게 해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되게 하려고 말로만 고백하는 신앙은 어려움이 닥치면 다 흩어진다고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다 흩어지는 이유는 제자들이 세상 안에서는 환난을 소유할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온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인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이 제자들도 역시 핍박할 것이기에 제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안에서는 환난을 늘 소유하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세상인 유대교 지도자들 안에서 환난 가운데 살고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제자들까지도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고 덧붙이셨다. 16:11절에서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며 종의 모습으로 섬기시되 죽기까지 섬기셔서 마귀를 완전히 정복하신 것이다.

고대의 전쟁은 대장끼리의 싸움이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대장인 마귀를 이기셨다면 그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 졸개들은 다 쫓겨 도망갈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전리품만 얻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면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온 것처럼 싸움은 어린 양과 마귀 사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귀 사탄의 편을 분열되게 하셔서 스스로 멸망하도록 하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적들이 아무리 커 보여도 그 대적들이 우리를 아무리 핍박해도 우리는 우리의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항상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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